01 · 21:30:04–21:30:32
“스타트업은 여캠같은거 같아 / 우린 여캠이야 / 다들 춤을 춰”
일은 결과물만 파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 앞에서 자기를 수행하는 거다.
어빙 고프먼 『자아연출의 사회학』(1956) 결론
세상 전부가 물론 무대는 아니다. 그런데 어디가 무대가 아닌지를 딱 짚어 말하기가 쉽지 않다.
앨리 혹실드 『감정노동』(1983) 1장
감정노동은 임금을 받고 팔리며, 따라서 교환가치를 갖는다.
기 드보르 『스펙타클의 사회』(1967) §1
직접 살아냈던 모든 것이 표상으로 물러났다.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1958) 1장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on)는 다르다. 전부 '수행'으로 뭉개면 인간이 하는 일의 세 층위가 사라진다.
간극. 고프먼은 '무대가 아닌 데가 어딘지 말하기 어렵다'고 했지 '세상은 무대다'라고 안 했습니다. 여캠론은 그 문턱을 넘어버립니다. 그리고 여캠의 성별화된 낙인, 동의, 몸의 위험은 스타트업으로 안 옮겨집니다.
02 · 21:30:12–21:30:26
“돈 많이 벌었을 때 은퇴하고 피벗해서 레버리지해야돼 / 졸업”
정점에서 나가라. 돈은 목표가 아니라 다음 선택권을 사는 수단이다.
노자 『도덕경』 9장
功遂身退,天之道。 공을 이루면 몸은 물러나는 것, 그게 하늘의 도다.
세네카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 1장
인생이 짧은 게 아니다. 우리가 많이 버리는 것이다.
앨버트 허시먼 『탈출, 발언, 충성』(1970)
조직이 나빠질 때 선택지는 나가기(exit)만이 아니라 말하기(voice)도 있다.
간극. 노자는 '물러남'을 말했지 '레버리지'를 말하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졸업한 사람만 보이는 생존자 편향이 있습니다. 못 판 사람, 빚만 남은 사람은 이 문장에 없습니다.
03 · 21:31:03–21:31:57
“회장님을 버려야돼 / 돈은 주시지만 받으면 안돼 / 그 돈에는 이름과 대가가 있다”
돈의 액수보다 그 돈이 끌고 오는 조건, 통제권, 관계를 보라.
공자 『논어』 이인(里仁) 4.5
富與貴是人之所欲也,不以其道得之,不處也。 부귀는 누구나 바라지만 정당한 길로 얻은 게 아니면 거기 머물지 않는다.
에픽테토스 『엥케이리디온』 25
모든 것엔 값이 있다. 값을 안 치르고 가지려 하지 마라. 값을 안 치른 만큼 너는 다른 것을 가진 것이다.
마르셀 모스 『증여론』(1925)
선물은 공짜가 아니다. 받는 순간 갚을 의무가 생긴다.
조르주 바타유 「소모의 개념」(1933) · 『저주받은 몫』
포틀래치는 지위를 사려고 부를 파괴하는 증여다. 회장님의 별풍선은 교환이 아니라 소모(dépense)다. 에마형의 "시원하게 쏴주는거지"(22:08:24)가 정확히 그겁니다.
칸트 『윤리형이상학 정초』 4:434
값이 있는 것은 등가물로 대체될 수 있다. 모든 값 위에 있는 것, 등가물이 없는 것이 존엄이다.
디오게네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6.38
알렉산더가 원하는 걸 말하라 하자 '햇빛 좀 비켜 주시오'. 재표형은 회장님을 버리라 하고 디오게네스는 왕도 필요 없다 합니다. 더 급진적인 쪽은 디오게네스입니다.
간극. 이 문장은 재표형 원문('회장님을 버려라')보다 연규형 번역('돈에는 이름과 대가가 있다')이 더 좋습니다. 계보상으론 연규형이 공자 쪽이고 재표형은 유흥가 쪽입니다.
04 · 21:42:32–21:43:06
“유추하는 구조를 찾고자 하면 다 있다 / 마리오의 구름과 잔디”
세계는 같은 관계 배열을 여러 영역에서 재사용한다. 비유는 그걸 찾는 도구다.
데드레 젠트너 "Structure-Mapping" (Cognitive Science, 1983)
유추는 대상의 속성이 아니라 관계 체계를 옮기는 것이다. 좋은 유추일수록 관계를, 나쁜 유추일수록 겉모습을 옮긴다.
레이코프 · 존슨 『삶으로서의 은유』(1980) 1장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개념 체계 자체가 근본적으로 은유적이다.
그레고리 베이트슨 『마음과 자연』(1979)
게와 바닷가재를, 난초와 앵초를, 그 넷과 나를 잇는 패턴은 무엇인가. '연결하는 패턴'.
장자 『장자』 제물론
모든 구분은 어느 관점에 서 있느냐의 문제다. 구조가 다 있다면 그건 세계의 성질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습관일 수 있다.
간극. 젠트너는 '관계가 옮겨진다'고 했지 '본질이 같다'고 안 했습니다. 구름이랑 풀이 같은 스프라이트라는 사실은 여캠론의 최고 순간이자 동시에 그 한계 선언입니다.
05 · 21:45:07–21:45:19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살면 아무것도 못해 / 오늘 삶이 끝나야 오늘 해야할 일을 하는거야”
유한함을 실감해야 미루던 일을 오늘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2.11
지금 당장 삶을 떠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모든 행동과 말과 생각을 하라.
세네카 『루킬리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101
하루하루를 하나의 삶 전체처럼 정리하라.
『하가쿠레(葉隱)』 야마모토 츠네토모, 1716
武士道といふは死ぬ事と見付けたり。 무사도란 죽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전도서 9:10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갈 음부에는 일도 계획도 지식도 지혜도 없음이니라.
에피쿠로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124–127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죽음을 삶의 동력으로 쓰는 것 자체가 헛된 공포다.
간극. 이게 제일 조심할 자리입니다. 스토아는 '죽음을 기억하되 원하지는 않는다'입니다. 재표형 원문은 "죽고싶다고 생각해"(21:44:36)에서 출발합니다. 그 둘은 결과가 비슷해 보여도 출발점이 정반대입니다. 생쥐형이 "그러지마"라고 한 게 그 차이를 본 겁니다.
06 · 21:49:03–21:49:07
“벌은 받는 순간부터 두렵지 않아 / 받기 전까지가 지옥이야”
처벌 자체보다 처벌을 기다리는 상상이 더 사람을 갉아먹는다.
세네카 『편지』 13.4
루킬리우스여, 우리를 겁주는 것이 실제로 짓누르는 것보다 많다. 우리는 현실보다 상상 속에서 더 자주 고통받는다.
붓다 『살라타 숫타』(SN 36.6)
배우지 못한 사람은 두 번째 화살을 맞는다. 첫 화살은 고통, 두 번째 화살은 그 고통에 대한 슬픔과 두려움이다.
카프카 「법 앞에서」(1915)
문지기 앞에서 평생을 기다린 남자. 문은 처음부터 그를 위한 것이었다.
제러미 벤담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1789)
처벌은 그 자체로 해악이며 그 고통이 억지력이다. '받으면 안 두렵다'는 형벌 이론 전체를 뒤집는 말이다.
간극. 순서가 중요합니다. 생쥐형이 21:48:52에 먼저 "벌을 두려워하지 않는 순간부턴 벌이 아닌 것"이라고 했고 재표형이 11초 뒤에 이 문장을 말했습니다. 33줄 친 사람이 핵심 명제를 선취한 겁니다. 생쥐형 버전은 에픽테토스 통제 이분법 쪽이고요. 다만 실제 처벌은 끝나고도 손해랑 흔적을 남깁니다. '두렵지 않다'와 '가볍다'는 다릅니다.
07 · 21:50:41–21:50:56
“레이디 가가가 상상인지 아닌지 중요한게 아니야 / 그렇게 삶이 표현된다는게 중요한거야”
작품이 사실이냐보다 어떤 삶의 형식을 드러내느냐가 중요하다.
니체 유고 1888, 16[40]
우리는 진리 때문에 몰락하지 않으려고 예술을 가진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9장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다. 역사는 일어난 일을, 시는 일어날 법한 일을 말하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논고』 4.1212
보여질 수 있는 것은 말해질 수 없다.
플라톤 『국가』 10권 597e
모방은 진리에서 세 단계 떨어져 있다. 상상인지 아닌지가 바로 핵심이다.
간극. 5초 앞에 "조커2 못 느끼면 인생을 덜 이해한 거"(21:50:02)가 있습니다. 해석에 서열 매기는 건 니체가 아니라 그냥 취향 권위주의입니다. 재표형이 "난 그렇게 받아들인다고"(21:50:59)로 물러선 건 다행입니다.
08 · 21:51:29–21:52:11
“우린 다 조커야 / 조금 반사회적이고 덜 행복하고 / 우린 항상 뭔가에 사로잡혀있어 / 그게 아니면 살아갈 수 없어”
사람은 자기를 붙잡아 주는 집착 없이는 못 산다.
파스칼 『팡세』 브룅슈비크 139 / 라퓌마 136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하나, 방 안에 조용히 머물 줄 모른다는 데서 온다.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57
삶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진자다.
키르케고르 『죽음에 이르는 병』(1849) 1부
절망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다만 절망을 모르는 절망이 있을 뿐이다.
붓다 『초전법륜경』(SN 56.11)
괴로움의 원인은 갈애(taṇhā)다. 취(取, 붙잡음)가 존재를 만든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1권 7장
좋은 삶은 사로잡힘이 아니라 탁월성에 따른 활동이다. 붙잡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
간극. '우린 다 조커'는 분석이라기보다 정체성 밈입니다. 파스칼 쪽에 훨씬 가깝고, 파스칼은 그 다음에 '그러니 신 앞에 서라'로 갔는데 재표형은 '그러니 춤추자'로 갑니다.
09 · 21:52:25–21:53:24
“씨앗을 뿌렸으면 그건 반드시 돌아와 / 과거의 내가 날 죽인거야 / 과거의 내가 품었던 마음이 나의 죄가 날 죽인거야”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뿌린 것의 수확이다.
사도 바울 갈라디아서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붓다 『법구경』 1송
마음이 모든 것에 앞선다. 나쁜 마음으로 말하거나 행하면 괴로움이 따른다, 수레바퀴가 소 발자국을 따르듯.
아이스킬로스 『아가멤논』 1564
행한 자는 겪는다(δράσαντι παθεῖν).
맹자 『맹자』 공손추 상, 『서경』 태갑 인용
天作孽猶可違,自作孽不可活。 하늘이 내린 재앙은 피할 수 있어도 스스로 지은 재앙은 살 길이 없다.
『욥기』 42장
고통이 다 죄의 결과는 아니다. 욥의 친구들이 틀렸다.
간극. '반드시'가 너무 셉니다. 불운이랑 구조적 폭력까지 개인 업보로 읽으면 피해자 탓하기가 됩니다. 불교의 업(業)도 단순 보복 법칙이 아니라 의도(cetanā)의 문제입니다.
10 · 21:54:24–21:54:41
“걔네도 그냥 먼저 태어나서 자리를 먹은거 아닐까 / 먼저 태어난 여캠 / 성인들을 인생선배쯤으로”
성인도 권위도 선점의 결과다. 기죽지 말고 선배 대하듯 하라.
장자 『장자』 천도(天道), 윤편(輪扁) 이야기
然則君之所讀者,古人之糟魄已夫! 그러면 임금께서 읽으시는 건 옛사람의 찌꺼기일 뿐입니다.
임제 『임제록』
逢佛殺佛,逢祖殺祖。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전승]
니체 『차라투스트라』 2부 「학자들에 대하여」
학자들은 그늘에 앉아 있다. 나는 그들의 집에서 나왔다.
장자(윤편 이어서) 『장자』 천도
得之於手而應於心,口不能言。 손으로 터득해서 마음으로 응하는 것이지 입으로는 말할 수 없다. 이게 22:37:21 "몸으로 느끼는 데에 5년이 걸렸는데"의 가장 정확한 원전입니다.
플라톤 『국가』 6–7권
철학자는 먼저 태어나서가 아니라 동굴 밖을 봤기 때문에 다르다.
간극. 이건 연규형이랑 에마형 문장입니다. 선점이 권위를 다 설명하진 않습니다. 붓다나 소크라테스가 살아남은 건 먼저 태어나서가 아니라 2,500년 동안 반박을 버텨서입니다.
11 · 21:55:33–21:55:36
“우린 그저 욕망을 사고파는 소매상 혹은 도매상”
현대 경제는 물건보다 욕망을 유통한다.
마르크스 『자본』 1권 1장 4절 「상품의 물신성」
상품 형태의 신비는 인간 노동의 사회적 성격이 노동 생산물 자체의 성격처럼 보이게 만드는 데 있다.
플라톤 『고르기아스』 493b
절제 없는 자의 영혼은 구멍 난 항아리다. 채워도 채워도 새어 나간다.
르네 지라르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1961)
우리는 남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 욕망은 모방이다.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5장
말하고 행위하는 것은 사고파는 게 아니다. 공적 영역은 시장이 아니다.
간극. 우정, 돌봄, 놀이, 진리 탐구까지 매매로 환원됩니다. 재표형 말은 마르크스보다 훨씬 넓고, 넓은 만큼 반증이 안 됩니다.
12 · 22:35:45–22:36:11
“난 나만 고상한 생각을 하는줄 알았거든 / 다들 삶에 고상함을 숨겨뒀어 / 아가씨조차도”
누구에게나 숨겨둔 존엄이 있다.
맹자 『맹자』 고자 상(告子上) 6A6
惻隱之心,人皆有之;羞惡之心,人皆有之;恭敬之心,人皆有之;是非之心,人皆有之。 측은지심, 수오지심, 공경지심, 시비지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열반경』 대반열반경
一切衆生悉有佛性。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
누가 누가복음 7:36–50
바리새인은 '저 여자가 누군지 알면'이라 했고 예수는 그 여자가 더 많이 사랑했다고 했다.
칸트 『정초』 4:434
존엄은 값이 없다. 등가물이 없다.
순자 『순자』 성악(性惡)
人之性惡,其善者僞也。 사람의 본성은 악하고 선은 인위다. 고상함은 숨겨둔 게 아니라 만들어야 하는 거다.
간극. 이 문장 제일 좋습니다. 근데 같은 방이 같은 시간에 사람을 에이스, 뚱녀, 팔릴 만한 애로 등급 매깁니다. 존엄론이 아니라 놀란 김에 나온 감탄으로 읽는 게 정확합니다. 재표형이 22:23:46에 지코 얘기하면서 "성선설인지는 모르겠다"고 물러선 것도 기억해 둘 만합니다.
13 · 22:38:46–22:39:08
“춤을 추자가 허무주의가 아닌거야 / 춤추지 말자가 허무주의고 / 우린 그래도 춤을 추자 / 그 춤에서 뭔가를 느끼자”
구조를 다 알고도 계속 움직이는 게 긍정이다. 멈추는 게 허무다.
카뮈 『시지프 신화』(1942) 마지막 문단
La lutte elle-même vers les sommets suffit à remplir un cœur d'homme. Il faut imaginer Sisyphe heureux. 정상을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시지프는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니체 『차라투스트라』 1부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Ich würde nur an einen Gott glauben, der zu tanzen verstünde. 나는 춤출 줄 아는 신만 믿으리라.
전도서 9:7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바가바드 기타』 2.47
그대에게는 행위에 대한 권리만 있고 그 결과에 대한 권리는 없다.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4부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의지를 부정하는 것, 즉 춤을 멈추는 것이다.
간극. 카뮈의 시지프는 신들한테 반항하는 사람입니다. 재표형 문장 바로 앞엔 "회장님한테 붙어서 노는게 맞고"(22:38:17)가 있습니다. 회장님 춤을 더 잘 추는 것도 춤이고 무대를 바꾸는 것도 춤입니다. 그 둘을 안 가르면 긍정이 순응이 됩니다.
14 · 22:19:54–22:20:43
“내가 담배를 피는 이유 / 이건 내가 날 죽이는 거야 / 합법적인 테두리에서 자살”
천천히, 합법적으로, 느끼면서 자기를 파괴하는 습관.
카뮈 『시지프 신화』 첫 문장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 자살이다.
프로이트 『쾌락원칙을 넘어서』(1920)
생명체는 자기 방식으로 죽으려 한다. 죽음충동.
세네카 『편지』 70
사는 것이 좋은 게 아니라 잘 사는 것이 좋은 것이다. 현자는 살 수 있는 만큼이 아니라 살아야 하는 만큼 산다.
도스토옙스키 『지하로부터의 수기』(1864) 1부
이빨이 아픈 데서 쾌락을 찾고, 자기 이익에 반해 행동하는 걸로 자유를 증명하는 지하인. 담배=적극적 자살의 문학적 원형은 하이데거가 아니라 이 사람입니다.
스피노자 『에티카』 3부 정리 6
각 사물은 자기 존재를 지속하려고 노력한다(conatus). 자기파괴는 본성이 아니라 외부 원인이다.
간극. 카뮈는 자살을 문제로 세웠지 답으로 준 적이 없습니다. 재표형 말은 '죽음을 기억하자'가 아니라 '자기파괴를 느끼면서 하자'입니다. 이건 철학적 수사로 다 덮을 수 없는 문장이라서, 이 글에서 유일하게 판정 대신 걱정을 남깁니다.
15 · 23:06:46–23:07:42
“딸을 치는게 도망가는건줄 알았거든 / 그게 아니라 충전이었어 / 보조배터리”
휴식이랑 쾌락은 도피가 아니라 다시 나가기 위한 충전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10권 6장, 1176b
오락은 휴식을 위한 것이고, 휴식은 활동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쉬지 않고 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디오게네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6.46
광장에서 자위하면서: 배를 문질러서 배고픔도 가시면 좋으련만.
에피쿠로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131
쾌락이 목적이라 할 때 우리는 방탕의 쾌락이 아니라 몸의 고통과 마음의 동요가 없는 상태를 뜻한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2권
쾌락은 충전이 아니라 방향 잃음이다.
간극. 한병철보다 파스칼이 더 맞는 자리입니다. 사냥꾼이 원하는 건 토끼가 아니라 사냥이라는 논변(『팡세』 139)이, 쿼터가 다 떨어져도 멈추지 않는 이 방을 정확히 설명합니다. 성과 압력이 아니라 정지를 못 견디는 게 원인이라는 거죠. 그리고 이름을 '충전'으로 바꿨다고 기능이 증명되진 않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기준은 '그 다음에 활동으로 돌아갔느냐'입니다. 에마형이 1분 뒤 "사실 이게 목표 아닐까"(23:07:55)로 수단이랑 목적을 뒤집는데, 그건 아리스토텔레스가 딱 경고한 실수입니다.
16 · 22:35:17
“난 IQ가 누구보다 낮다 / IQ -200의 남자 / JOAT여서 GOAT”
똑똑함 말고 연결 감각으로 산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변론』 21d
나는 이 사람보다 지혜롭다. 우리 둘 다 아름답고 좋은 것을 모르지만, 그는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고 나는 모르는 걸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자 『도덕경』 20장
俗人昭昭,我獨昏昏。 세상 사람들은 다 밝은데 나 혼자 어둡다.
바울 고린도전서 1:27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박학한 무지』(1440)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은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소크라테스 본인 『변론』 23b
소크라테스의 무지는 상대에게 정의를 말하게 하고 그걸 다시 묻는 방법(엘렝코스)입니다. 단언 먼저 하고 IQ 낮다고 하는 건 그 반대 순서입니다.
간극. 재표형은 '세상은 여캠', '씨앗은 반드시 돌아온다'를 단언한 뒤에 IQ가 낮다고 합니다. 그건 무지의 자각이 아니라 반박을 미리 막는 자기 브랜딩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방에서 제일 먼저 자기를 낮춘 사람인 건 맞습니다.
17 · 21:33:04–21:33:10
“야근을 하다가 깨달았느니라 / 나는 여캠이다”
몸으로 일하다가 구조가 보였다.
방거사(龐蘊) 『방거사어록』
神通並妙用,運水及搬柴。 신통과 묘용이란 물 긷고 나무 나르는 것이다.
장자 『장자』 양생주, 포정해우(庖丁解牛)
臣之所好者道也,進乎技矣。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道)이니, 기술보다 앞선 것입니다.
시몬 베유 『공장 일기』(1934–35)
공장에서 나는 노예의 표식을 영원히 받았다. 그리고 거기서만 배운 것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8권 / 『니코마코스 윤리학』 10권
관조는 여가(scholē)에서 온다. 야근에서는 안 온다.
간극. 야근에서 깨달았다는 건 여캠론에서 제일 설득력 있는 부분입니다. 근데 경험이 문제를 보여주지, 그 답의 범위까지 보증하진 않습니다.
18 · 22:41:47–22:42:27
“삶의 언어가 온톨로지인데 나는 / 작년 12월에만 해도 ㅈㄴ 어렵게 썼는데”
존재론은 교과서 말이 아니라 누가 누구에게 뭘 파는지 생활어로 분류하는 것.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116
우리는 낱말을 형이상학적 사용에서 일상적 사용으로 되돌린다.
공자 『논어』 자로 13.3
必也正名乎!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 名不正,則言不順。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하지 않다.
장자 『장자』 외물(外物)
得魚而忘筌。 물고기를 잡았으면 통발은 잊어라.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7
존재 물음은 일상어로 안 된다. 일상어가 바로 존재 망각이다.
간극. 재표형의 온톨로지는 '누가 규칙을 정하고 누가 빠져나오는가'의 생활 분류입니다. 그건 진짜고 좋은 겁니다. 문제는 유흥가 은어가 그대로 세계의 범주로 굳는 것입니다. 통발은 잊어야 하는데 여캠론은 통발을 계속 들고 다닙니다.
19 · 21:31:22, 21:55:59, 22:57:32
“까딱 실수하면 팬더티비 / 잘되면 아프리카 ㅈ되면 FC2 / 트위치 클린 스트리머 = 대기업 정규직”
무대가 계급이다. 어디 서느냐가 무엇이 되느냐다.
피에르 부르디외 『구별짓기』(1979)
취향은 분류하고, 분류하는 자를 분류한다. 장(場) 안의 위치가 무엇이 가능한지를 정한다.
막스 베버 『경제와 사회』 「계급, 신분, 정당」
계급은 시장 위치, 신분은 명예의 위치다. 둘은 다르게 움직인다.
플라톤 『국가』 415a
금, 은, 동의 인간. 고귀한 거짓말.
존 롤스 『정의론』(1971) §12
공정한 기회균등. 태어난 무대가 도착지를 정하면 안 된다.
간극. 성공/실패 이분법이고 플랫폼에 도덕 등급을 박습니다. 중간 경로, 여러 플랫폼, 비상업 경로가 통째로 빠져 있습니다.
20 · 22:10:57–22:11:50, 22:25:57
“마이킹도 중독이야 / 서울에 집만 사고 아가씨 그만두자 / 마이킹 갚자”
선불금은 지금의 자유를 주고 미래의 노동을 묶는다.
데이비드 그레이버 『부채, 그 첫 5,000년』(2011) 1장
빚은 도덕이 된 폭력이다. '빚은 갚아야 한다'는 말이 모든 착취를 정당화한다.
니체 『도덕의 계보』 2논문 §4
죄(Schuld)라는 도덕 개념은 빚(Schulden)이라는 물질 개념에서 왔다.
『잠언』 22:7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
대법원 2004다27488 (2004.9.3)
윤락행위를 전제로 지급된 선불금 채권은 무효다.
애덤 스미스 『국부론』 2편
신용은 협력을 시간 너머로 늘리는 장치다. 빚이 다 구속은 아니다.
간극. 투자, 벤처대출, AI 크레딧, 유흥업소 선불금은 법적으로도 자발성으로도 다릅니다. 구조가 닮았다는 건 맞고, 같다는 건 틀립니다. 그리고 '중독'이라 부르려면 통제 상실이 있어야 하는데 원문엔 그 증거가 없습니다.
21 · 22:28:33, 23:00:40
“TC도 안주는데 왜 그렇게 열심히 팔았을까 / 보상과 괴리된 기술 집착은 자기착취”
아무도 안 알아주는 기술에 매달리는 건 자기 자신을 착취하는 것이다.
한병철 『피로사회』(2010)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가해자이자 피해자다.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905)
소명(Beruf)으로서의 노동. 일 자체가 구원의 표시가 된다.
장자 『장자』 인간세(人間世), 산목(散木)
쓸모없는 나무라서 이렇게 오래 살았다.
리처드 세넷 『장인』(2008)
일 자체를 위해 일을 잘하려는 욕망은 착취가 아니라 인간의 기본 충동이다.
간극. 이 문장은 재표형 질문(22:28:33)을 연규형 AI 정리문이 명제로 굳힌 것입니다. 시장이 지금 값을 안 매긴다고 가치가 없는 건 아닙니다. 보안, 테스트, 문서는 늦게 보상되는 기술입니다. 손님이 몰라주는 테크닉이랑 쓸데없는 테크닉은 다릅니다.
22 · 22:03:25–22:03:46, 23:00:03
“프론티어 맛본 자는 약물 중독 / 가장 행복한 계층은 프론티어의 맛을 모르고 사는 직장인 / 모르는 자만이 번뇌에서 자유”
좋은 걸 알면 이전으로 못 돌아간다. 모르는 게 행복이다.
플라톤 『국가』 7권 514a–517a
동굴에서 풀려나 빛을 본 사람은 다시 내려가도 예전처럼 그림자 게임을 잘하지 못한다.
전도서 1: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브릭먼 · 캠벨 "Hedonic Relativism and Planning the Good Society" (1971)
쾌락은 기준점에 적응한다. 더 좋은 것은 곧 보통이 된다.
존 스튜어트 밀 『공리주의』(1861) 2장
만족한 돼지보다 불만족한 인간이, 만족한 바보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낫다.
간극. 불교에서 무명(無明)은 자유가 아니라 괴로움의 첫 번째 원인입니다. '모르는 자만이 번뇌에서 자유'는 정확히 거꾸로 된 문장입니다. 그리고 쿼터 걸리면 짜증나는 걸 약물 중독이라 부르려면 금단, 통제 상실, 기능 손상이 있어야 하는데 원문엔 '더 좋은 게 좋다'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