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은 사람보다
늦게 늙는다
뛰어난 사람을 한 번 모으는 능력과, 뛰어난 사람이 계속 태어나고 지휘하고 물러나게 만드는 능력은 달라요. 역사에서 강한 조직과 약한 조직은 두 번째 능력으로 갈렸어요. 증국번은 상군을 세워 태평천국을 진압했지만, 그 밑에서 큰 이홍장은 회군이라는 자기 군대를 따로 세웠어요.
청말의 상군과 회군, 르네상스의 공방, 청의 팔기, 과거제, 산서표호, 예수회까지, 중국과 유럽에서 인재가 떠나고 늙고 물려준 이야기예요. 서로 다른 속도로 도는 시계 네 개, 역사 사례 아홉 개, 스타트업 생애주기 다섯 단계, 조직 원칙 일곱 개도 같이 나와요.
AI 네이티브 조직도 언젠가 권력을 다시 나눠야 하는데, 그때 무엇이 필요한지 이 사례들에서 찾아봤어요.
조직도는 멈춰 있는데, 조직은 계속 움직인다
조직도만 보면 누가 어디 있고 누가 누구에게 보고하는지만 보여요. 실제 조직에서는 23세의 뛰어난 실행자가 33세가 되고, 40세의 탁월한 관리자가 50세가 돼요.
젊은 제자는 어느 순간 스승보다 최신 기술을 더 잘 알게 되고, 자기 팀을 갖고 싶어 해요. 창업자는 예전에 성공한 덕에 권한을 쥐고 있는데, 지금 눈앞의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현장의 다음 세대일 수 있어요.
그래서 AI 네이티브 조직이 길게 안고 갈 문제는 "어린 천재를 어떻게 잘 관리하지?"가 아니에요.
더 중요한 질문은 그 천재가 크거나, 떠나거나, 늙거나, 더 어린 사람에게 밀려날 때 조직이 권력을 어떻게 다시 나누느냐예요. 역사에서 강한 조직과 약한 조직을 가른 건 최고의 인재를 한 번 모으는 능력보다 엘리트를 계속 돌리는 능력이었어요.
AI 조직에는 서로 다른 속도로 도는 시계가 적어도 네 개 있다
조직 안의 노화는 몸이 늙는 것 하나로 끝나지 않아요. 조직 안에는 적어도 네 개의 시계가 있어요. 개인의 실행 속도는 빠르게 변하고, 기술과 맞는 정도는 그보다 더 빨리 변해요.
조직 안의 지휘권은 천천히 변하고, 주식과 소유권은 거의 안 변해요.
어떤 엔지니어가 35세가 됐다고 갑자기 지적으로 무능해지진 않아요. 판단력은 오히려 좋아질 수 있어요.
곤란해지는 건 그 사람이 성공했던 환경이 지금과 달라졌는데도 예전 성과가 지금의 지휘권으로 자동으로 넘어올 때예요.
AI는 이 틈을 극단적으로 벌려요. 2026년에 코딩 에이전트를 제일 잘 쓰는 24세가 있다고 해 볼게요.
2031년의 핵심 인터페이스는 코드를 뽑아 주는 채팅형 에이전트가 아닐 수도 있어요. 그러면 지금의 'AI 네이티브'가 겨우 5년 뒤엔 한 시대의 일하는 방식을 붙든 구세대가 될 수도 있어요.
그래도 그가 받은 지분과 직함은 남아요. 창업 공신의 권위도요.
AI 조직의 핵심 문제는 실행 능력은 빨리 바뀌고 권한은 늦게 바뀌는 그 차이를 어떻게 다루느냐예요. 나이 든 사람을 내보내는 건 답이 아니에요.
뛰어난 사람은 혼자 나가지 않는다
청말의 상군(湘軍)이 좋은 예예요. 당시 청군은 모집과 훈련이 부실했고, 싸울 이유가 약했고, 지휘관과 병사의 손발이 안 맞았어요.
증국번의 상군은 이걸 고치려고 만든 조직이었어요. 중앙의 익명 인사 대신 지휘관이 믿는 사람을 직접 뽑고, 그 사람이 또 자기 밑 사람을 뽑게 했더니 결속이 단단해졌어요.[출처]
이런 조직에서는 유능한 부하 주변에 다시 사람과 평판, 신뢰, 정보가 쌓여요. 이홍장이 그랬어요.
증국번 밑에서 컸어요. 그리고 회군(淮軍)을 조직했고, 나중엔 따로 선 군사적, 정치적 중심이 됐어요. 증국번은 태평천국을 진압한 뒤 상군 약 12만 명을 해산시켰어요.
이건 자기 군대를 영구적인 사병으로 두지 않겠다는 정치적 선택으로 해석돼요.[출처]
증국번 한 명이 이홍장 한 명으로 바뀐 게 아니었어요. 실제로 일어난 일은 이쪽에 가까워요. 처음엔 증국번 개인이 있었고, 그 주변에 인재 네트워크가 생겼고, 거기서 이홍장 같은 독립 지휘관이 나왔고, 그 지휘관이 자기 사람을 모아 따로 조직을 세웠어요.
뛰어난 사람은 조직을 떠날 때 자기 머리만 들고 나가지 않아요. 그동안 쌓은 관계망과 신뢰를 통째로 들고 나가요.
유럽의 용병대장 콘도티에리도 비슷했어요. 도시국가가 돈을 주고 산 건 지휘관 한 명과 그가 끌어올 병력, 장교, 신용, 개인적인 충성망이었어요.
베네치아 같은 나라는 콘도티에리에 기대면서도 그들이 따로 힘을 갖는 걸 두려워했고, 길게 보고 국가에 묶인 상설 군대를 키웠어요. 중세와 근세 군사 조직의 '가문(household)'도 개인적 충성이 모이는 중심이었어요.[출처]
AI 조직에서는 이게 '팀째 퇴사'로 나타나기 쉽다
뛰어난 AI 엔지니어 한 명이 나가면 따라갈 수 있는 게 많아요. 그 사람과 다시 일하고 싶은 동료 몇 명이 갈 수 있어요.
모델을 평가하던 암묵적인 기준과 고객이 정말 원하는 것에 대한 감도 갈 수 있어요. 안에서 다듬은 에이전트 워크플로, 어떤 시도가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기억, 외부 투자자와 채용 후보가 그 사람에게 보내던 신뢰까지 같이 갈 수 있어요.
AI 회사는 공장이나 항공사만큼 유형자산에 기대지 않아요. 컴퓨트는 빌리면 돼요. 모델도요. 코드와 제품 초안은 AI로 금방 만들어요.
그러니 핵심 인물이 독립하는 비용이 훨씬 작아요. 스타 인재를 '평생 직원'으로 붙잡겠다는 계획은 역사로 봐도 경제로 봐도 불안정해요.
승인된 분가가 더 현실적이에요. 상군에서 회군이 갈라져 나온 식이죠. 안의 리더에게 새 사업을 맡기거나 별도 법인을 차려 주고, 본사는 지분 일부와 인프라, 브랜드 관계를 쥐어요.
사람을 붙잡으려다 적으로 만드는 것보다 친한 독립 세력으로 내보내는 편이 나을 수 있어요.
최고의 제자를 키운 조직은 필연적으로 미래의 경쟁자를 만든다
르네상스 화가의 공방은 AI 스타트업과 놀랄 만큼 닮았어요. 라파엘의 공방에는 조수가 여럿 있었어요.
1520년 라파엘이 죽자 줄리오 로마노와 잔프란체스코 펜니가 공방을 이끌며 남은 작업을 이어갔어요. 그런데 줄리오는 1524년 만토바로 가서 궁정 화가 겸 건축가가 됐고, 거기서 라파엘식 공방을 다시 차렸어요.
발명과 설계는 자기가 하고 실행은 상당 부분 조수에게 맡기는 방식 그대로였어요.[출처]
줄리오는 처음엔 라파엘의 생산력을 키워 줬고, 그다음 라파엘이 판단하는 방식을 익혔고, 마지막엔 독립해서 같은 공방을 만토바에 복제했어요. 공방에겐 이게 양날이었어요. 뛰어난 제자는 최고의 생산 수단이면서 미래의 경쟁자였어요.
유럽의 도제 제도도 값싼 청소년 노동만 대 준 게 아니었어요. 숙련을 다음 세대로 넘겼고, 그 숙련은 들고 다닐 수 있는 자산이었어요.
길드가 없어진 뒤에도 도제 제도는 여러 지역에서 살아남았어요.[출처]
AI 조직은 더 빨라요. 예전엔 젊은 엔지니어가 독립하려면 기술, 채용, 제품, 영업, 운영을 최소 몇 년은 배워야 했어요.
지금은 약한 부분을 AI가 꽤 메워 줘서, 도제가 독립한 마스터가 되기까지 10년 걸리던 길이 몇 년으로 줄 수 있어요.
그럼 좋은 관리자의 성공 기준은 "그 사람이 아직 내 밑에 있나?"가 아니에요. 내가 키운 사람이 독립할 만큼 컸을 때, 그 독립이 내 조직을 부수는지 네트워크를 넓히는지가 기준이에요.
최고의 인재가 절대 안 나가는 조직도 의심해 볼 만해요. 아무도 못 컸거나, 나가는 비용이 비정상적으로 높거나, 바깥에서 그 사람들 가치를 안 쳐주는 조직일 수도 있거든요.
노화의 좋은 경로와 나쁜 경로
젊은 실행자가 나이를 먹는다고 꼭 밀려나야 하는 건 아니에요. 르네상스의 큰 공방에서 마스터는 모든 면을 직접 칠하지 않았어요.
구도와 발명, 핵심 부분 수정, 고객 관계, 최종 품질을 맡았고, 실행은 조수들이 했어요. 줄리오 로마노도 라파엘에게 배운 이 방식을 만토바에서 다시 썼어요.[출처]
처음엔 직접 만들고 나중엔 설계와 판단을 맡는 것, 역사에서 좋은 노화는 이렇게 역할이 올라가는 모습이었어요.
AI 엔지니어도 그렇게 늙을 수 있어요. 직접 코드를 뽑던 사람이 문제를 쪼개 시스템을 설계하고, AI가 낸 결과를 검증하고, 사람과 문제를 짝지어 배치하고, 여러 팀이 쓰는 판단 기준을 설계하는 쪽으로 올라가요.
이 사람은 최신 프레임워크 API를 다 외우지 않아도 돼요. 대신 시스템이 어디서 무너질지, 어떤 측정값을 믿으면 안 되는지, 누구에게 무슨 문제를 맡길지를 알아야 해요.
나쁜 쪽은 직함이 굳어요. 예전 실행 성과가 높은 직함이 되고, 그게 영구적인 거부권이 되고, 마지막엔 새 세대가 하는 일을 승인만 하게 돼요.
이 사람은 더는 최전선에 없으면서 최전선에 있는 사람이 뭘 할지를 정해요.
나이 탓이 아니에요. 역할에 유효기간이 없는 게 문제예요.
그래서 AI 회사는 사람을 내보내기 전에 역할부터 만료시킬 수 있어야 해요. 그러면 지분도, 창업 공신이라는 명예도, 자문이나 멘토 일도 그대로 둘 수 있어요. 지금 제품에 대한 지휘권만 다시 검증받으면 돼요.
돈에 대한 권리와 지금의 작전 지휘권은 떼어 놓아야 해요. 이걸 가르지 않으면 오래 기여한 사람의 권리를 지키려다 조직 전체가 지난 세대의 인질이 돼요.
공훈이 신분으로 굳을 때
청의 팔기(八旗)는 중국사에서 제일 극단적인 예예요. 팔기는 원래 청이 정복을 해낼 수 있게 한 군사 조직이자 사회 조직이었고, 제국을 다스린 소수 엘리트 집단이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팔기라는 신분은 대물림되는 직업이자 신분이 됐고, 군사적으로는 덜 중요해졌어요. 18~19세기에는 주둔 팔기 인구의 가난과 재정 문제가 실제 군사 기능을 가로막았어요.[출처]
처음 팔기는 "우리가 실제로 제국을 정복했다"고 말할 수 있었어요. 몇 세대 뒤엔 "우리 조상이 제국을 정복했으니 우리가 계속 이 자리에 있어야 한다"가 됐어요.
성과가 신분이 됐어요.
AI 스타트업에서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어요. 초기 직원들은 정말로 회사를 살렸어요.
제품도 고객도 없을 때 밤을 새웠고, 위험을 떠안았고, 창업자와 같이 온갖 일을 했어요. 지분과 인정은 당연히 받아야 해요.
두 문장을 놓고 볼게요. "초기 공헌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계속 받는다." "초기 공헌을 했으므로 앞으로의 모든 기술, 제품 결정에 거부권을 가진다." 둘은 달라요. 앞 문장의 보상은 받을 만할 수 있어요. 회사가 팔기처럼 굳는 건 뒤 문장의 거부권에서 시작해요.
길드도 두 얼굴이었어요. 도제를 가르치고 기술을 넘기는 일을 조직했지만, 지역과 시대에 따라 마스터 자녀에게 유리한 규칙을 두거나 마스터가 되는 길을 막기도 했어요.
물론 모든 길드가 똑같이 닫혀 있진 않았어요. 마드리드에서는 외지 출신 직인들이 마스터 집단을 채웠어요.[출처]
AI 회사의 '높은 채용 기준'도 처음엔 실력을 지켜 줘요. 그러다 어느 순간 그 기준이 변할 수 있어요. 특정 회사 출신이어야 하고, 특정 인물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특정한 근무 시간 패턴을 보여야 '진짜'가 돼요.
특정 말투와 태도를 보여야 '주도적'이고, 특정 AI 도구를 써야 'AI 네이티브'예요. 나중엔 특정 연령대와 성별이 주는 문화적 인상을 능력 대신 보게 돼요.
그때부터 채용은 지금 있는 사람과 닮은 사람을 다시 뽑는 길드 규칙이 돼요. 역사에서 가장 위험했던 건 나이 든 사람이 무능해지는 일보다, 한 세대의 성공 스타일이 영구적인 신분 기준으로 굳는 일이었어요. 팔기가 그랬고, 일부 길드도 그랬어요.
중국 관료제의 해법, 선발과 순환
중국 제국은 개인 세력이 굳는 걸 막으려고 다른 방법도 썼어요. 과거제 덕에 황제는 세습 귀족만 쓰지 않고 시험으로 새 엘리트를 뽑을 수 있었어요.
연구들은 이 제도가 사회적 이동의 길을 연 면과, 공통의 학문적, 문화적 기준으로 정치와 사회 엘리트를 다시 찍어 낸 면을 같이 짚어요. 완전히 열린 능력주의도, 그냥 세습 제도도 아니었어요.[출처]
청대 관료제에는 회피제(回避制)도 있었어요. 관리는 자기 고향이나 가까운 친척과 같은 곳에서 일하는 게 제한됐어요.
지방관을 정해진 기간만 외지로 보낸 것도 지역 사회와 엉겨 따로 세력이 되는 걸 막으려는 장치였어요.[출처]
상군과 정반대예요. 상군은 개인적인 신뢰를 끝까지 끌어올렸고 팀은 강해졌어요. 대가는 군벌화 위험이었어요.
관료제는 개인적인 결속을 일부러 끊어 조직에 충성하게 했고, 그 대가로 현장 지식과 응집력이 약해졌어요.
AI 회사도 이 둘 사이를 오갈 것 같아요. 초기엔 오래 같이 일한 사람들끼리 꾸린 작은 셀이 빨라요.
그런데 리더 한 명이 사람, 고객, 기술, 데이터를 다 쥐면 그 팀은 회사 안의 독립 영지가 돼요. 거꾸로 사람을 너무 자주 돌리면 깊은 신뢰와 말로 안 하는 지식이 날아가요.
현실적인 해법은 완전한 순환보다 부분적으로 엮어 두는 쪽일 가능성이 높아요. 팀장은 일정 기간 뒤 다른 영역을 맡고, 핵심 인재가 한 사람에게만 매이지 않고, 고객 관계와 인프라 권한이 한 셀에 몰리지 않고, 팀 평가를 직속 상사 혼자 하지 않고, 조직 전체가 같이 쓰는 기술적, 문화적 장치를 따로 두는 식이에요.
이탈리아의 도시공화국들도 짧은 임기와 직위 순환, 선거와 추첨을 섞어서 한 사람이나 한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게 하려 했어요. 그런데 뽑을 수 있는 사람이 닫힌 귀족 집단뿐이면, 직위를 돌려 맡아도 권력은 같은 계층 안을 돌았어요.[출처]
창업 공신 다섯 명이 VP, CTO, CPO를 서로 바꿔 맡는 회사도 그 도시공화국들과 같아요. 직책은 돌지만 엘리트는 그대로라서, 새 사람이 실제 권력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세대교체가 안 일어나요.
기존 사다리를 갑자기 없애도 탈이 난다
구세대를 다 치우면 될까요? 청은 1905년에 과거제를 없앴어요. 그 뒤에도 기존 학위와 신분의 영향은 바로 사라지지 않았고, 새 교육과 직업 질서로 넘어가는 데 1910년대까지 걸렸어요.
경제사 연구는 과거제 폐지로 지방 엘리트가 중앙으로 갈 길이 막히면서 몇몇 지역에서 지방 공공재 공급과 엘리트 규율이 약해졌다고 지적해요.[출처]
과거제가 낡았다고 그 제도가 맡던 일까지 필요 없어진 건 아니었어요. 과거제는 적어도 새 엘리트를 뽑는 길이었고, 지방 인재가 중앙으로 가는 문이었고, 공부와 성취에 대한 보상이었어요.
지방 엘리트를 중앙 질서에 묶어 두는 기대였고, 사회적으로 올라가는 공식적인 이야기였어요. 낡은 제도를 없애면 이 일을 맡을 새 제도가 있어야 해요. AI 스타트업도 똑같아요.
AI 스타트업에서 "주니어는 AI가 대체하니까 안 뽑는다", "중간관리자는 필요 없으니까 없앤다"는 말도 당장은 그럴듯해 보일 수 있어요. 그럼 미래의 시니어와 배분자(allocator)는 어디서 나올까요?
주니어가 하던 반복 작업을 AI가 한다면 잡일을 다시 시킬 필요는 없어요. 대신 새로운 도제 제도를 만들어야 해요. 젊은 사람을 중요한 결정 옆에 앉히는 거예요.
왜 이 고객을 포기했는지, 왜 이 기술을 고르지 않았는지, 왜 이 모델의 좋은 수치를 안 믿었는지, 왜 뛰어난 후보를 안 뽑았는지, 왜 3개월 만든 프로젝트를 접었는지를 옆에서 봐요. AI 이후의 도제 교육은 판단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 주는 일이 돼요. 코딩 문법을 전해 주는 과정은 이제 아니에요.
사람을 붙잡는 가장 오래된 방법, 경제적 파트너로 만들기
중국의 산서표호(山西票號)는 멀리 있는 지점의 직원과 관리자를 다루려고 '신고(身股)'를 썼어요. 몸을 지분으로 쳐 주는 이익 배분 장치였어요.
성과를 내고 오래 일한 직원과 지점 책임자에게 배당에 낄 권리를 줘서 주인과 대리인의 이해를 맞추려는 장치였어요. 다만 이 지분은 보통 기업 자산에 대한 온전한 소유권과 달랐고, 이익을 나눠 받을 권리에 가까웠어요.[출처]
메디치 은행도 비슷했어요. 먼 지점의 지점장을 그냥 고용인으로 대하지 않았어요. 예전 지점장을 파트너로 계속 남기기도 했고, 피렌체 본부는 지점 보고서와 결산을 검토했어요.
알아서 움직이는 현지 인재에게 돈의 몫을 주되, 정보와 감사로 고삐를 잡으려 한 거예요.[출처]
뛰어난 사람은 자기가 만든 가치의 대부분을 남이 갖는다고 느끼면 독립해요. AI 덕에 창업 비용이 싸질수록 더 그래요.
앞으로 강한 AI 회사는 핵심 인재에게 연봉과 작은 스톡옵션만 주지 않고 파트너가 되는 길을 열어 줘야 할 가능성이 높아요. 하지만 여기서도 돈의 몫과 지휘권은 떼어 놓아야 해요. 지난 가치에 대한 지분과 보상은 지금 조직을 영원히 지휘할 권리와 달라요.
전에 핵심 엔지니어였던 사람이 지분과 배당은 그대로 갖고 현업 지휘권은 후임에게 넘길 수 있어야 해요. 이 구조가 자리 잡으면 나이 먹는 게 지는 일이 아니에요. 직접 실행하던 사람은 심사자, 파트너, 내부 투자자, 후배의 후원자, 새 셀의 설립자, 바깥 스핀아웃의 이사로 옮겨 갈 수 있어요.
사람을 치우지 않고 권한의 모양만 바꾸는 이 방식이 가장 문명화된 세대교체예요.
창업자가 사라진 뒤, 라파엘 공방과 예수회는 어떻게 갈렸나
창업자가 죽은 뒤 라파엘 공방과 예수회는 다르게 갔어요. 라파엘이 죽은 뒤 뛰어난 조수들은 남은 작업을 이어받았어요.
하지만 핵심 인재였던 줄리오 로마노는 만토바로 가서 자기 공방과 이름을 만들었어요. 공방의 기술과 운영 방식은 살아남았지만, 중앙 조직 하나로 오래가진 않았고 여러 후계자의 조직으로 흩어졌어요.[출처]
예수회는 창립자 이냐시오 데 로욜라가 1556년에 죽은 뒤에도 하나의 국제 조직으로 남았어요. 예수회 헌장은 그가 죽고 나서인 1558년 첫 총회에서 승인됐어요.
로마를 중심으로 편지를 주고받고 기록하고 보고하는 체계 덕에 멀리 떨어진 지역 조직이 제각각 떨어져 나가려는 흐름이 억눌렸어요. 동시에 예수회 안에서도 중앙집권과 현장 지식 사이에 긴장이 있었고, 시대가 바뀌면 창립 때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논쟁도 계속됐어요.[출처]
후계자가 뛰어났는지만으로는 이 차이가 다 설명되지 않아요. 라파엘 공방은 라파엘의 이름과 취향, 고객 관계, 살아 있는 판단에 많이 기대고 있었어요.
예수회는 창립자의 생각을 헌장, 선발과 훈련, 직위, 총회, 보고 체계, 기록, 공통의 정체성으로 옮겨 놓으려 했어요.
AI 스타트업도 창업자가 사라지기 전에 창업자 머릿속에 있는 걸 제도로 옮겨 둬야 해요. 다만 전부 규정집으로 만들면 안 돼요. 가장 중요한 구분은 이거죠.
바뀌면 안 되는 건 헌법이죠. 누구를 위해 있는 회사인지, 무슨 수로는 돈을 벌지 않을지, 어떤 위험은 떠안지 않을지, 어떤 사람을 핵심 인재로 볼지가 여기 들어가요. 계속 바뀌어야 하는 건 습관이고, 여기에는 어떤 모델과 개발 방식을 쓰는지, 조직도를 어떻게 짜는지, 어떤 시장을 먼저 치는지, 기술 결정을 누가 내리는지가 들어가요.
창업자의 미션은 지키되, 창업자가 2026년에 쓰던 플레이북까지 떠받들어서는 안 돼요. 예수회가 살아남는 데 필요했던 것도 이냐시오 없이 규칙을 해석하고 고칠 수 있는 통치 구조였어요. 그가 살아 있는 것처럼 구는 건 필요 없었어요.
'AI 네이티브 인재'라는 선발 기준도 늙는다
이제 가장 불편한 결론을 말할 차례예요. 지금 AI 스타트업들이 찾는 '젊은 AI 네이티브 인재'도 언젠가 과거제의 시험 과목처럼 될 수 있어요.
처음엔 이 말이 정말 드문 특성을 가리켜요. 도구를 빨리 익히고, 자기 영역을 가리지 않고,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는 사람이요. 권위 대신 결과를 보고, AI를 생각의 연장으로 쓰고, 불확실한 상황을 오래 버텨요.
문제는 그다음이에요. 조직은 재기 어려운 본질 대신 눈에 잘 보이는 겉모습으로 뽑기 시작해요. 지원자들도 그걸 배워서 밤새 일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확신에 찬 척하고, 기존 세대를 낮춰 말하고, 최신 도구 이름을 줄줄이 꺼내고, 뭐든 며칠이면 만든다고 하고, 조직이 기대하는 캐릭터를 연기해요.
과거제는 공개 경쟁으로 인재를 뽑으면서 특정 문화와 공부 방식을 다시 찍어 냈어요.[출처]
'AI 네이티브 인재' 선발도 어느 순간 능력을 찾던 장치에서 정해진 캐릭터를 연기하는 사람을 찾는 장치로 변할 수 있어요.
선발 기준도 주기적으로 버려야 해요. 회사에 필요한 사람은 지금 최전선에서 실제로 결과를 내는 사람이에요. '2026년형 AI 네이티브'는 필요 없어요.
나이, 성별, 말투, 근무 시간, 특정 AI 제품에 대한 취향을 능력 대신 보기 시작한 회사는 앞에서 본 길드와 같은 길을 걸어요.
이 역사를 AI 스타트업의 생애주기로 옮기면
사례들을 시간 순서로 놓아 보면, 강한 AI 스타트업은 대체로 다섯 단계를 지나는 것 같아요.
제1기는 전우 집단이에요. 2~8명이 모여요. 창업자 한 사람을 믿고요.
직책은 의미가 없어요. 다들 여러 일을 해요. 상군처럼 개인적 결속이 가장 잘 먹히는 때고, 규정이나 순환은 속도에 밀려요.
제2기는 공방이에요. 10~40명쯤 되면 뛰어난 시니어 몇 명과 그 주변의 젊은 빌더 셀이 생겨요.
회사는 제품 회사예요. 동시에 사람을 가르치는 학교가 돼요. 제일 뛰어난 신입은 AI를 써서 빨리 크고, 2~4년이면 작은 팀을 혼자 이끌 수준이 돼요.
제3기는 첫 번째 분가예요. 최고의 젊은 인재가 권한과 지분, 자율을 더 달라고 해요. 여기서 길이 셋으로 갈려요.
권한을 안 주면 그 사람은 경쟁사로 독립해요. 안에 독립 조직을 만들어 주면 회사 안의 제후가 되고, 파트너나 분사 구조를 만들어 주면 친한 연방으로 커요.
제4기에는 창업 공신이 신분이 돼요. 초기 인재들이 30~40대가 되고, 훌륭한 배분자로 크는 사람도 있어요.
최전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지위와 거부권을 쥔 사람도 생겨요. 새로 온 사람들은 "실력이 있어도 저 사람들 위로는 못 올라간다"고 느끼기 시작해요.
팔기와 길드처럼 굳을지, 예수회와 관료제처럼 돌릴지가 이때 정해져요.
제5기에는 회사마다 모양이 달라져요. 연방형 조직(A)에서는 역할을 다시 검증받고, 지분은 지켜지고, 사내 창업과 분사가 허용돼요.
모회사 주변에 셀과 스핀아웃이 여럿 생기고, 나갔던 사람이 다시 돌아오기도 해요. 창업자와 시니어 배분자는 각 셀을 직접 다스리지 않고 사람과 자본, 브랜드, 인프라를 이어 줘요.
창업 귀족제(B)에서는 초기 직원들이 직함과 지분, 채용권, 정보를 다 쥐어요. 젊은 사람은 실행만 해요. 결정에는 못 들어가요.
회사는 아직 자기를 'AI 네이티브'라고 부르지만 창업 때의 AI 쓰는 법을 의식처럼 되풀이하고, 그러다 바깥의 더 어린 회사에 통째로 밀려나요.
군벌화(C)에서는 셀마다 리더가 사람과 기술, 고객을 데리고 독립해요. 회사는 하나의 제국으로 버티지 못해요. 여러 후계 회사로 쪼개져요.
원래 회사가 죽어도 그 인재 네트워크가 산업을 쥘 수 있어요. 조직은 사라져도 계보는 살아남아요. 라파엘의 공방처럼요.
소유는 세대를 건너 남는다
이 순환에서 결국 가장 큰 몫은 극소수가 가져가요. 사람과 자본과 문제를 이어 주는 자리에 있는 배분자들이에요.
이 사람은 세대마다 가장 뛰어난 실행자일 필요가 없어요. 1세대 빌더가 3년, 2세대 빌더가 4년, 3세대 빌더가 5년 일하는 동안에도 창업자와 플랫폼의 소유권은 그대로 남거든요.
젊은 사람 한 명 한 명의 에너지와 기술 적합성에는 끝이 있어요. 회사의 지분과 고객 관계, 브랜드, 데이터, 자본은 세대를 넘어 쌓여요.
상단(商團)의 대주인, 공방의 마스터, 은행의 파트너, 군사 조직의 지휘관도 그랬어요. 자기보다 젊은 여러 세대의 실행력을 오래가는 자산으로 바꿨고, 그 덕에 큰 몫을 가져갔어요.
AI 시대에는 예전보다 한 가지 제약이 더 강해요. 실행자의 독립이 너무 쉬워요.
공장 노동자는 공장을 들고 나갈 수 없었지만, AI 빌더는 노트북과 인맥만 들고 나가서 꽤 많은 걸 다시 만들 수 있어요. 그래서 젊은 사람의 에너지를 뽑아 쓰기만 하는 배분자는 오래갈 수 없어요.
큰 조직을 만들고 싶은 배분자라면, 젊은 사람이 독립하는 것보다 계속 이어져 있는 게 이득이라고 느끼게 만들어야 할 거예요.
길게 보면 강한 형태는 독재적인 단일 회사보다 여러 덩어리가 엮인 모양에 가까울 수 있어요. 모회사가 있고, 파트너 집단이 있고, 독립적인 빌더 셀과 사내 스핀아웃, 졸업생 네트워크가 있고, 그걸 공동 인프라가 받치는 식이에요.
중국식으로 말하면 관료제 하나보다는 막부 여럿을 거느린 연방 쪽이에요. 유럽식으로는 공장 하나보다는 상인 가문과 공방, 종교 조직을 섞은 쪽이고요.
역사에서 끌어낸 일곱 가지 조직 원칙
AI 스타트업이 세대교체를 견디려면 최소한 다음 장치가 필요해요.
첫째, 지분에는 유효기간이 없어도 지휘권에는 있어야 해요. 지난 공헌에 대한 보상은 지키되 현업 결정권은 지금의 역량과 정보 접근성을 보고 다시 나눠야 해요. 그래야 팔기처럼 조상의 공훈이 지금의 자리가 되는 일을 막을 수 있어요.
뛰어난 사람을 평가할 때 자기 성과와 함께 후계자를 길러 냈는지도 봐야 해요. 자기 없이는 아무것도 안 돌아가게 만든 사람은 영웅처럼 보여도 조직으로 보면 단일 장애점이에요.
라파엘이 죽은 뒤 공방이 흩어진 것도 라파엘 한 사람에게 많이 기댄 탓이 컸고, 자기를 대신할 사람 둘을 키운 리더가 한 단계 위예요.
내부 분가 경로를 공식으로 열어 두는 것도 필요해요. 새 제품, 새 시장, 새 법인을 독립적으로 굴릴 길이 없으면 뛰어난 사람은 비공식적으로 떠나요.
모회사가 소수 지분과 공동 인프라, 브랜드 관계를 쥐고 실행자가 실제 자율을 얻는 구조가 필요해요. 그래야 상군에서 회군이 갈라져 나온 일이 적이 아닌 동맹의 탄생이 될 수 있어요.
권력을 돌리는 일과 인재 풀을 여는 일은 같이 가야 해요. 이탈리아 도시공화국에서 보듯 같은 귀족끼리 직위를 돌리면 권력은 그 계층 안에 머물러요.
창업 공신끼리 직책만 바꾸는 건 순환이 아니에요. 새 세대가 예산, 채용, 제품 결정권을 실제로 손에 쥘 수 있어야 해요.
창업자의 헌법과 습관은 따로 다뤄야 해요. 미션과 넘지 않을 선은 문서로 남기고, 조직도, 기술, 시장, 일하는 방식은 후계자가 바꿀 수 있게 둬요.
퇴사를 배신으로 정의해서는 안 돼요. 훌륭한 사람은 언젠가 나갈 가능성이 높아요.
나간 사람이 경쟁자가 될 수 있다고 관계를 끊으면 졸업생이 전부 적이 돼요. 다시 투자하고, 채용하고, 고객을 소개해 주고, 다시 합류할 수 있는 동문 체계를 만드는 편이 나아요. 그러면 줄리오 로마노 같은 사람이 떠나도 네트워크는 넓어질 수 있어요.
일곱째로, 선발 기준과 리더 자신도 다시 시험해야 해요. 예전의 높은 성과나 특정 캐릭터가 지금의 판단권을 보장해서는 안 돼요. 그렇게 두면 과거제가 특정 문화를 찍어 낸 것처럼 회사도 한 캐릭터만 찍어 내게 돼요.
실제 문제를 풀어 보게 하면서 사람과 리더를 계속 검증해야 해요.
오래가는 조직은 스스로를 대체할 수 있는 조직이다
중국과 유럽의 역사를 시간 순서로 보면 가장 많이 되풀이되는 흐름은 이래요. 비범한 사람이 조직을 만들고, 그 주변에 제자와 따르는 사람들이 모이고, 제자들이 커서 독립을 원해요.
창업 세대의 공훈은 권력과 신분으로 굳고, 조직은 순환을 제도로 만들든지 갈라져요. 순환하지 못한 조직은 바깥의 새 조직에 밀려났어요.
따라서 AI 스타트업의 궁극적인 경쟁력은 뛰어난 어린 사람을 찾아내는 능력만이 아니에요. 그 사람이 떠날 때 조직이 안 무너지고, 나이를 먹을 때 새 역할을 받고, 자기를 넘어선 후배에게 넘겨주고, 그 후배가 독립해도 네트워크 안에 머물게 만드는 능력까지가 경쟁력이죠.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배분자는 어린 천재를 영원히 붙잡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 천재가 자기를 대신할 어른으로 크게 돕고, 그 어른이 다시 다음 천재에게 자리를 넘기게 하는 사람이에요.
AI 시대에는 이 순환 주기가 예전보다 훨씬 짧아질 가능성이 높아요. 기술 세대가 바뀌는 주기가 20년에서 3~5년으로 줄 수 있으니까요.
오래가는 AI 회사는 뛰어난 사람을 보유하는 회사가 아니라, 뛰어난 사람이 계속 태어나고 크고 지휘하고 물러나고 분가하도록 설계된 회사일 가능성이 높아요. 아주 과격하게 말하면 이래요.
자기 회사 안의 23세가 자기 회사 안의 33세를 교체할 수 없다면, 결국 회사 밖의 23세가 그 회사 전체를 교체한다.